Women in the cities
얼바닉이 사랑하는 도시, 그리고 그곳에서 만난 여성들.
각각의 도시가 지닌 무드와 활기를 닮아 있는 그들은 어떤 방식으로 얼바닉을 입고 있을까요.
사는 동네, 나이, 관심사는 다르지만 자신만의 방식으로
얼바닉의 스타일을 자유롭게 즐기는 여성들로부터 우리는 기분 좋은 영감을 발견하곤 합니다.
다양한 도시의 사람들, 그리고 다양한 감각을 얼바닉을 통해 만나 보세요.
Saeeun Park, Paris
전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발레단, 동양인 최초의 수석 무용수.
누구도 쉽게 넘보기 힘든 묵직한 수식어와 함께
파리 오페라 발레단의 빛나는 별 ‘에투알’로 활동하는
무용가 박세은을 파리에서 만났다.
깃털처럼 가볍고 한없이 가녀리지만 자신만의 아우라로 아름답게 몸의 언어를 노래하는 그녀와 함께 했던 무대 밖의 순간들.
Urbanic(이하 U): 평소 당신을 편안하게 만들어주는 루틴이나 순간이 있는지요.
박세은(이하 S): 아무래도 엄마이다 보니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고 발레단에 출근했을 때,
저만의 시간이랄까 제 하루가 시작되는 것 같아요. 그래서 그때가 제일 편해요.
U: 지금까지 참여했던 많은 무대 중에서 마음에 가장 깊이 남은 공연은 무엇인가요?
S: 작품 하나하나가 소중하고 특별해서 딱 한 작품을 꼽는다는 게 어렵긴 한데요.
그래도 <마농 이야기(L’Histoire de Manon; 소설 <마농 레스코>를 바탕으로
영국 안무가 케네스 맥밀란이 발레로 옮긴 작품이다. 2023년 파리 오페라 가르니에에서 공연되었으며,
박세은도 주인공 마농 역을 맡았다)>라는 작품이 기억에 가장 많이 남는 것 같아요.
출산을 하고 복귀한 첫 무대였는데, 아이를 낳기 전과 이후의 무대가 주는 느낌이 굉장히 달랐고 인상 깊게 남았습니다.
U: 출산 이후에 무대로 빠르게 복귀하셨지요. 산후 관리는 어떻게 하셨는지, 또한 무용수로서의 삶과 엄마의 역할 사이에서
어떻게 균형을 맞춰오고 있는지요.
S: 그 부분은 아직도 숙제처럼 남아있어요. 제겐 발레보다 육아가 훨씬 어렵거든요.
발레가 어렵다고 생각한 적은 한 번도 없는 것 같아요.
발레가 재미있고 궁금하고 신나면서 설레는 일이라면, 육아는-제가 아이를 무척 사랑하고 아이가 저에게 주는 행복감이
발레보다 훨씬 더 크지만-무척 힘들어요.
엄마라는 역할은 많은 희생을 필요로 하는 일이지요.
발레가 저를 위한 희생이라면, 지금은 제가 아닌 다른 사람을 위한 희생을 배워가는 중이에요.
두 가지 역할을 제대로 병행하기 위해선 시간을 잘 나눠 써야 하고 아직은 배워가는 중입니다.
저는 출산하고 6주 만에 발레를 다시 시작했지요.
발레가 산후 회복에 도움이 많이 되니 시작해 보라는 의사의 권유를 받았거든요.
그때만 해도 배와 골반이 모두 열려 있는 상태여서, 거울을 보면서 과연 가능할까 싶었어요.
그래도 10년 넘게 해오던 일이라 그런지 금방 돌아오더라고요. 오히려 빨리 발레를 다시 한 게 도움이 많이 됐어요.
U: 무용수로서 슬럼프를 겪은 적이 있었는지, 그리고 그 시기를 어떻게 극복하셨는지도 궁금합니다.
S: 발레는 항상 재밌고 설레었던 것 같아요. 제 성격상 '잘 해야지'하는 부담보다는,
조금씩 나아지는 저의 모습을 기대하게 되니까 발레가 점점 더 좋아진 면이 있어요.
제가 발레단에 온 이후에 디렉터가 여러 번 바뀌었는데-지금이 네 번째 디렉터예요-
딱 한 번 저랑 안 맞는 분이 계셨어요. 당시에 저는 클래식한 방향으로 춤을 추고 싶었는데, 추구하던 방식이 달라서 슬럼프가 왔어요.
무척 힘들었고, 발레단을 떠나야겠다는 생각도 했었어요.
하 하
-
“ 발레는 항상 재밌고 설레었던 것 같아요.
제 성격상 '잘 해야지'하는 부담보다는,
조금씩 나아지는 저의 모습을 기대하게 되니까
발레가 점점 더 좋아진 면이 있어요.” -
-
-
U: 현재의 당신이 있기까지 깊이 영향을 준 사람이나 멘토가 있나요?
S: 누구나 가까이에 있는 사람으로부터 가장 많은 영향을 받는다고 하잖아요.
저는 파리에 온 지 2년이 됐을 때 남편을 만났어요.
7년 동안 연애를 했고 결혼한 지는 이제 5년이 됐는데,
오랜 시간을 함께 보내면서 남편을 닮는 것 같아요.
저는 모든 일을 다 남편과 대화해요.
남편은 제게 베스트 프렌드이자 멘토 같은 사람이에요.
저를 많이 변화시켰지요.
저는 좋고 싫은 걸 확실하게 알아도 표현하는 건 어려워하는 성격이어서,
거절할 때 어떻게 표현해야 할 지가 항상 어렵고 그러다 보니
제 스스로가 힘든 성격이라고 여겼어요.
그런데 남편이 대화를 통해 프랑스의 방식을 자연스럽게 알려줬어요.
정확하게 의사를 전달하면서 나의 색깔을 잃지 않는 것.
그게 제가 얻은 가장 큰 교훈인 것 같아요. 그래서 이제는 저도 표현을 잘해요.
U: 발레는 나라마다 혹은 발레단마다 고유한 스타일이 있다고 느껴지는데요.
수석 무용수인 에투알로서 경험한 파리 오페라 발레단의 분위기나 예술적 색채는 어떤가요?
S: 무척 어려운 질문이에요. 저 스스로 파리 오페라 발레단에 대해 충분히 잘 알고 있다고 확신하다가도
그 확신이 자꾸 흔들리곤 해요. 감독이 바뀔 때마다 발레단의 분위기나 선호하는 스타일이 바뀌는 것 같기도 하고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파리 오페라’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있거든요.
프랑스 발레를 정확히 이해하려면 프랑스 문화를 알아야 된다고들 해요.
프랑스 사람들은, 되게 솔직하고 가식이 없어요. 직설적으로 말하고 자유롭게 표현하죠.
프랑스 춤도 그런 것 같아요. 예전에는 프랑스 춤이 우아하고, 정교하고, 발 사용이 섬세하다고 생각했는데
어떤 때는 또 그런 것 같지 않아요. 프랑스 춤을 정의하기란 꽤 어렵고, 그냥 프랑스 문화가 프랑스 발레가 아닐까,
요즘은 그렇게 생각을 해요.
U: 문화와 연결되어 있는거군요.
S: 맞아요. 저도 그렇지만, 한국 사람들은 대화할 때 눈을 잘 못 마주치잖아요? 수줍어하고 시선을 피하는데,
프랑스 사람들은 당당하고 직설적이에요. 눈으로 감정을 교류하고 자신의 강인함이나 우아함 이런 것들을 발산해요.
멋있는 귀걸이나 목걸이를 걸치고 나를 보여준다기보다는, 대화할 때 말과 눈빛에서 나오는 힘이 다른 나라 사람들과는
좀 다르다고 봐요. 발레에서도 그렇고요. 무대를 장악하는 능력이 정말 대단하거든요.
'무대를 먹어버려야지'라는 표현이 굉장히 와 닿죠. 무대를 장악하는 힘, 그게 프랑스의 중요한 스타일이 아닐까 싶네요.
-
-
Marseille Blouse, Marilyn Pants (used Wash), Mailman Bag (black)
Fisherman Sandals (black), Band Ring (silver)
U. 서울과 파리를 오가며 살아오셨는데, 두 도시에서 '나답다'라고 느껴지는 장소나 그런 순간들이 있을까요?
S: 프랑스에서 오래 거주하다 보니 지금은 이곳이 좀 더 집 같은 느낌이에요.
파리에서 가족을 꾸리기도 했고요. 제가 최근에 느낀 건데요.
세계 곳곳을 다니면서 공연하다 보니, 저는 발레단 연습실에 있을 때가 제일 편해요.
제 집 같고, 긴장감도 안 들고요.
새로운 환경에 가면 그곳에 적응도 해야 하고,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이 다르게 보이기도 하는데,
발레단은 제가 너무 잘 아는 공간이라서 그런 긴장감이나 낯설음이 하나도 없어요.
하지만 아무래도 한국이나 다른 나라에 가게 되면, 스튜디오 환경이나 수업을 같이 듣는 사람들, 선생님, 피아니스트 등
분위기에 따라 조금은 긴장이 되는 편이에요.
한국에서 꼽는다면, 아마도 공항? (웃음)
U: 앞으로 이루고 싶은 목표가 있나요?
S: 진짜 많이 받는 질문인데, 아무리 생각해 봐도 답하기가 쉽지 않아요.
사실, 제가 발레 커리어에 있어서는 정점을 찍은 거라 더 이상 올라갈 데가 없어요. 진짜 감사한 일이지요.
파리 에투알은 매번 승진해서 올라가는 게 정말 어려워요. 승진을 해야만 주역을 맡을 수 있고,
주역을 해야 행복할 수 있고… 이렇게 행복과 연결되는데,
저는 이미 그 위치가 되어 원하는 역할을 맡을 수 있고, 이런 부분에 있어서 스트레스가 없으니까
개인적인 생활을 즐길 수 있고 육아도 부담을 많이 느끼지 않으면서 할 수 있어요.
그래서인지 저는 다음 목표를 생각하는 게 어렵더라고요.
어쨌든, 제가 지금까지 발레를 해왔으니 결국에는 발레와 관련된 무언가를 계속하지 않을까요?
지금 제 일을 잘 하고 있으면, 어디선가 저를 또 필요로 할 것 같아요.
U: 얼바닉과 함께 한 오늘, ’지금 이 계절의 나‘를 제일 표현한 옷은 무엇이었나요?
S: 검은색 치마 위에 걸친 푸른 재킷이에요. 시원하면서도 맑은 파리의 하늘과 잘 어울렸던 것 같아요.
Frog Button Shirt, Fresco Scoop Neck Knit (black), Rosie Satin Skirt (black), Pebble Bag (black)


